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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 - 정치깡패의 역사

by rock2560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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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영균 - 정치깡패의 역사

 

 

소제목:

 

 

별명
다또상
출생
1916년[1]
사망
1987년 이후 추정 (향년 71세 이상)
신체
160cm 미만, 80kg 전후
직업
조직폭력배, 정치깡패

 

 

서론:

 

 

신영균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에 활동했던 정치깡패로 알려져 있습니다. 별명인 "닷또상"으로도 알려져 있는 그는 키는 160cm도 되지 않았지만, 80kg 가까운 체중과 엄청난 근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력과 업적을 통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맨 오른쪽에 있는 인물이 신영균.

 

 

 

본론:

 

 

 

일제강점기 시절, 신영균은 김두한의 부하로 활동했으며, 대한민청(대한민주청년총동맹)의 감찰부장을 맡았습니다. 그는 김두한의 지시에 따라 조사과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였고, 이 과정에서 직접 정진룡을 살해한 사건의 주요 인물이었습니다.

 

 

 

정진룡은 김두한과 함께 활동하던 동료였지만, 해방 이후 좌익주의에 끌려 김두한과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좌익단체인 조선청년전위대를 결성하여 김두한과 대한민청을 테러하고 반공활동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김두한은 정진룡과의 갈등을 겪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신영균은 정진룡을 공격하여 그를 살해하였습니다.

 

 

 

1947년 4월 19일, 국제극장에서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악극 '청춘의 봄'이 공연 중이던 때, 김두한이 등장하여 정진룡과 충돌이 있었습니다. 이후 4월 20일, 김두한의 지시로 신영균은 권총으로 김천호를 포함한 좌익전위대 35명을 납치하여 대한민청 별동대 본부 지하에 감금시켰습니다.

 

 

 

그리고 신영균은 분노에 찬 마음으로 쇠파이프로 정진룡을 세 차례에 걸쳐 흉부를 강타하여 정진룡은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는 김두한과 그의 부하들인 신영균, 김영태, 김관철, 홍만길, 조희창(상하이 조), 고경주(휘발유) 등 14명이 가담했습니다. 신영균은 이 사건으로 형을 선고받았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시기에 풀려나고, 청년조선총동맹의 회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휴전된 후에도 김두한을 따르며 활동하였습니다. 신영균은 그의 정치깡패 행위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근황이 알려져 있었으며, 1987년 이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론:

 

 

 

신영균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에 활동한 정치깡패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김두한의 부하로 활동하며 대한민청의 감찰부장으로서 활동하였고, 정진룡을 직접 살해한 사건의 주요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대한민청 후신 단체인 청년조선총동맹의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도 김두한을 따라다니며 활동하였습니다. 그의 장수한 생애와 또래의 조폭들과의 관계는 그의 인물성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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